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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불 좀 꺼주세요 :: 늦깎이 불륜~ 아름답진 않다.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2. 7. 2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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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불 좀 꺼주세요 :: 늦깎이 불륜~ 아름답진 않다. 
- 글: 김현동(cinetique@naver.com) 

+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을 타는 중년 남녀의 회고록
+ 몸 따로 마음 따로 인 2중적 시선을 통해 조명해본 인생 이야기


고전 하면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떨칠 수 없다. 때문에 20만 명의 관객이 찾아온 희대의 화제작이라는 명칭이 있음에도 ‘먹힐까?’ 라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시대는 변했고 의식도 함께 변한 것이 그 이유다. 다만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고 했던가! 오전 시대에 방영되는 아침 드라마의 소재와 같이 진부함이 농염하게 녹아있음에도 오감을 자극하는 소재는 세월을 탔음에도 말초신경을 짜릿하게 자극하며 온 몸의 신경을 집중시켰다.

약간의 노출과 약간은 선정적인 줄거리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곤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강산이 변해도 4번은 변했을 20년간의 세월을 탄 작품 치고는 연극 ‘불 좀 꺼주세요’의 노골적인 유혹이 아직도 통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작품이 원하는 대로 불 좀 꺼볼까?

불 좀 꺼주세요? 야릇한 상상에 왠지 모를 기대를 하게 된다. 사상이 불순해서가 아닌 제목만큼이나 19금(禁)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오는 반응이다. 1990년대 이만희 작가의 작품이 대학로 무대에 재공연 된다는 소식에 과거의 회상신을 내심 기대한 것도 없진 않다. 내심 20세 이상 관람가인 연극 ‘불 좀 꺼주세요’가 전하고자 했던 속내가 통할까 했던 기대도 변치 않았다.

상상하던 것 그대로 불을 꺼야만 이뤄질 행위를 위한 전초전인 셈이다. 다만 전초전이 지나치게 길다보니 19금(禁)이라는 팻말에 남다른 상상력을 펴낸 관객이라면 실망의 여지가 크다. 왜냐고? 손만 잡아도 부끄럽고 눈만 마주쳐도 설레던 20년 전의 풋풋함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정이 있는 중년의 남녀가 서로를 향한 탐닉의 시간을 갖는 과정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누구나 생각을 했음 직 하지만 그렇다고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기에 연극 ‘불 좀 꺼주세요’를 보고 공감한다는 것은 호불호가 갈린다. 다만 이들이 상처받은 지난 과거를 듣고 나면 왠지 모를 안쓰러움에 용납되는 수준이랄까. 마찬가지로 왜냐고? 사람은 원래부터가 외로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 중년의 남녀를 통해 들어본 발칙한 이야기.

물론 외롭다고 모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전초전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서 밀당. 바람을 필까? 말까? 이런 식이다. 하지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사람은 이미 가정이 있는데다가 직업이 사회적으로 책임을 요하는 것에 있어 쉽지 않았음이 짐작된다. 생각해보자 남자는 국회의원이고 여자는 교사였다는데 함부로 몸을 놀릴 수 없는 거 아닌가! 물론 요즘 국회의원 하는 짓을 보면 이보다 더한 짓도 가능하지만 이 작품이 시작된 시기가 아름다운 20년 전이다. 강산도 맑고 사람의 인격 또한 몹시도 아름다운 시절의 불륜이라. 발칙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인가? 좀처럼 진도를 빼지 못한다. 알거 다 아는 중년 남녀가 뭐하는 짓인가 싶은데 그 순간 내면의 젊은 남녀가 먼저 등장해 서로의 속내를 까발린다. 여과 없는 대사에 여과 없는 몸동작. 짧은 핫팬츠 차림을 한 여자에 좀 생겼다 싶은 남자는 서로를 향해 거침없는 구애를 펼친다. 그렇고 보니 이 두 사람 왠지 숨기는 것이 너무 많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캐릭터는 요즘 세태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다. 세월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온 부모세대의 이야기는 지금 봐도 안쓰럽다. 피 끓는 젊은 시대에는 먹고살라 바쁘게 지내다 저 사람이 내 사람인가 가늠만 해보다가 정작 결혼은 엄한 사람과 하게 되는 드라마 소재가 마냥 현실성 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술자리 안주삼아 떠올리는 과거 연애사가 먹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두 사람의 부진한 진도는 아무리 사회통념상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 때문이라고 해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좁은 방 그것도 침대 위에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 거부하지도 않는 몸을 머리가 마다한다. 아니 두 사람 모두가 딴생각으로 정신없는데 20대의 분신은 자꾸만 작업에 돌입하는데 정신없다. 공감 가지 않는 두 사람의 밀당 대신 20대의 분신을 통한 대리만족은 관객의 호기심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고리타분한 대사를 펼치는 중년과 달리 노골적인 대사를 뽐내는 20대 분신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우리내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20대 때는 제법 발칙하긴 한데 중년이 된 두 사람은 볼수록 안쓰럽다.

| 몸 따로 마음 따로. 통할 수나 있을까?

이야기는 매듭을 끊듯 끊어 진행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시골 학교에서 시작됐다. 산골 여고사와 학교 농장일꾼으로 만나 여자가 남자를 향해 호감을 보이지만 이 남자 좀처럼 눈치가 없는 듯 밀어내기만 한다. 서로 싫지 않는 눈치를 주지만 뭔가 숨기는 남자의 수상한 행동. 그와 중에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려 서로의 인연은 풀 수 없게 꼬여버리고 여자는 남자의 친구와 혼인을 하게 된다는 것. 남자를 찾아다니는 여자가 기절한 순간 친구의 못된 본능에 당해버린 여자는 슬퍼하면서도 그 관경을 지켜보는 관객은 짠한 마음뿐이다.

짧게 나오는 정사신은 분명한데 그 과정에 앞뒤 토막내버린 생선마냥 몸통만 뚝 떼놓고 펼쳐지니 이야기 연결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뭐 이 순간 중요한 건 둘 의 정사신이니까 납득되는 수준이다. 조명도 붉은색에 본능에 마음을 맡긴 두 사람. 반면 남자는 과거나 현재나 같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함께 재직했던 학교의 여자다. 허나 나설 수 있는 환경을 탓하며 마음을 숨기는 데만 급급하고 그러다가 만난 지금의 아내와 혼인하게 된다. 한 없이 엇갈린 두 사람의 속마음은 내숭에 충실한 나머지 새드엔딩으로 치닫게 한 단초가 된다. 비극과 사랑의 차이는 백짓장이랄까! 그만큼 아픔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 앙큼한 내면에 불침을 꽂는 작품, 불 좀 꺼주세요.

한 무대를 통해 조명해본 현재와 과거 그리고 내면의 세계는 발칙하지도 깜찍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분신을 통해 중년남녀의 속내를 까발려 봤더니 20대의 그것과 다를 건 없다는 것도 작품이 주는 재미다. 지금의 본 모습이 중후했다면 과거에는 발랄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관건은 총 4명의 남녀가 한 무대에 동시 등장해 호흡을 맞춰 내면과 외면의 환상궁합을 뽐내는 과정이다. 실시간으로 교차하는 생각의 차이가 전달되는 순간순간이 관객의 반응을 변화시켰고 불이 꺼지는 야릇한 상상 그 순간에도 복잡한 내면과 외면을 통해 일상을 탐지했다. 서로 다른 분신을 통해 시기적절하게 끼어들고 빠지는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는 일이 반복된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연기력이 흩트려 진다면 관객이 눈치를 채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만큼 연기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세월을 탄 작품인 탓에 전반적으로 배경이 낡은 것과 고즈넉한 대사가 많다는 것 그리고 조명에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녹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의 삶은 매듭이다. 어떤 매듭을 먼저 푸느냐에 따라 고리에 달려 있는 결과도 다르기 마련이다. 중년의 남녀를 통해 조명해본 인생이란 매듭은 그렇게 낭만 있게도 그렇다고 억척스럽지도 않았다. 단지 둘을 통해 살펴 본 인생이라는 것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안쓰러울 뿐이다. 우연을 인연으로 맺지 못해 뒤늦게 맞바람이라는 묘한 목표를 향해 몸을 맡겨보지만 그것조차도 속내처럼 추진하지 못한 두 사람의 미적미적한 행동에는 분명 어느 한쪽의 리더십이 필요했다. 극이 종료되기 전 여자가 내뱉은 한 마디 “불 좀 꺼주세요”가 인상에 남는 이유다.

강영걸 연출과 이만희 작가의 연극 ‘불 좀 꺼주세요’에는 연출자의 딸이자 배우였던 연기자 강윤경이 여자 분신 역으로 출연한다. 이어 88서울올림픽의 굴렁쇠 소년 윤태웅이 남자 분신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 외에도 여인 역에 남기애, 이효림, 사내 역에 박성준, 여자 분신 역으로 박아름, 여자다 역에 이현주와 장정선 그리고 남자다 역에 신승용이 출연했다. 공연은 오는 9월 9일까지 대학로극장에서 한다. 문의)극단 완자무늬 02-929-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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