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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행복, 행복이란 두 글자에 마침표를 찍다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0. 1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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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하면 웃는 모습, 기쁘고 활기찬 모습이 떠오른다. 불행하다고 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찡그리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기에 반대되는 장면이다. 제목만큼이나 연극 행복도 밝은 장면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정작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의 불행한 행복으로 표출됐다.

행복이란 주제를 가지고 상반된 가치를 지난 두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서로의 행복을 챙기지만 결국 행복의 끝은 죽음이라는 결말. 과연 연극 행복을 본 관객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말에서 극적인 반전을 예상 했다면 그것조차 빗나가는 너무도 슬픈 작품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부끄럽게 만들기에 진한 슬픔을 체감하고 싶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처음에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할 것만 같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행복은 사라지고 불행만 남겨졌다.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야 한다. 는 바람에 나는 불행하지만 너라도 행복해라고 외치게 만든다.

여자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남자는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가진 채 서로를 지켜주는 두 사람의 눈빛이 떨린다. 이를 지켜보는 이는 마냥 힘들다.

뭐 이런 작품이 다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드는 연극 행복. ‘두 사람 그냥 행복하게 놔두면 안 돼요’ 라는 바람이 입에 맴돌지만 어쩔 수 없다면 적당히 아프게 하고 살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그래서 더 안타까운 작품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지금은 불안한 마음을 가질 시간도 아깝다고 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에 “자꾸 시간이 아까워집니다.”고 반복한다.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짧은 대사다. 행복했다면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했겠지만, 불행하다면 이 순간이 어서 지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의미다. 이제 두 사람에게는 기약할 수 없는 시간만 주어졌다.


|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와 울 수 없는 여자

기억이 지워져가는 남자는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 체력 하나만을 믿고 뛴 권투선수였다. 신인왕전을 넘어 지금 아마추어 파이터로 링에 올랐다. 자신이 배운 방법대로 자신을 통해 새로운 신예의 실력을 키워주는 역할이다. 스스로 자부심도 가졌다. 그런데 최근 이상증세를 보인다.

의사는 젊은 그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말한다. 방금 둔 물건을 기억 못하고 찾고 다닌다. 건방증이 심해지면서 자신이 한 말도 번복한다. 깜박 깜박 잊히는 지난 과거를 단순한 실수로만 치부하고 무심코 넘겨버리는 남자. 얼마나 더 기억이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절대로 울면 안 되는 여자는 전 세계를 손으로 꼽아도 몇 안 되는 희귀병에 걸렸다고 했다. 병명은 코넬리아 디란지 증후군. 의사는 평생을 무표정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며 치료약이 언제 나올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꺾어버렸다.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어도 부족할 판에 환자보고 포기하라니, 돌팔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사실이다. 절대로 웃어서도 울어서도 안 되고 행여 감동이 북받혀 울 경우 죽을 수 있다고 하니 그저 황당할 뿐이다.

“기도가 막혀 숨을 못 쉬게 될 수 있으니 곁에서 대비를 해야 합니다”며 남자의 손에 쥐어준 주사 한개. 여자가 쓰러지면 기도에 주사를 놓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목에 대어보면서 무심코 한 마디를 뱉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아프겠다.” 게다가 함께 있어서는 안 될 불행한 두 사람은 부부다.


| 답답한 두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얼마 전까지 두 사람은 남부럽지 않게 행복했다. 그래서 서로의 병명을 안 그날 밤도 행복하게 보여야 했다. 여자는 남자를 챙겼다. 남자의 병을 알았다.

치료약을 비타민이라고 속이고 남자에게 건넸다. 자신과 함께 했던 기억이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지금 우리가 서로를 모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 받을 게 겁이 난 것이 아니다. 행복했던 가장 큰 순간이 잊혀 남자가 불행해지는 것이 보기 싫어서 한 거짓말이다.

자신과 함께 지난 지난날이 어느 순간 거짓말이 될 수 있다는 의사의 엄포에 불안감이 온몸에 엄습했다. 지워질 수 있다. 순백의 백지처럼 사랑도 추억도 그리고 행복했던 기억도 모두 기억 못할 수 있다. 평생 자기만을 사랑하고 지켜주겠다는 남자의 한 마디가 전부였던 여자는 그 것까지 지워질까 두려워했다.

남자도 여자를 챙겼다. 식도 못 올리고 가난한 집에 시집와 지금껏 고생을 시켰지만 이제는 자신의 진심을 보일 수 없게 됐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능하다고 여기는 남자. 자신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다.

이제는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약속을 지켜서도 안 되고 지킬 수도 없다. 평생을 불행하게 곁에 두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믿고 그때까지 여자를 지켜주고 싶은 것이 남자의 유일한 바램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병을 알았다.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고 피할 수도 없게 됐다. 죽어야 하는 여자와 지워져야 할 남자. 이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을 거라는 생각마저 드는 슬픈 가정사다. 


| 행복이란 두 글자를 무색하게 만들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여자는 두 사람을 쏙 빼 닮은 아이도 임신했다.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은 바짝 타 내려간다. 이제 간신히 행복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본격적인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 남편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 마누라가 동화를 읽어주면요. 하하하 하하하. 이렇게 막 웃어요. 제가 그 사람 몫까지 웃어줘야 되거든요” 모든 것이 멈춰버린 그 순간 관객의 눈에 맺히는 눈물. 조용한 무대에 훌쩍이는 소리가 하나 둘 늘어만 갔다.

세상에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혹시 동전 좋아하세요? 눈을 감고 동전을 만져보면 사람의 얼굴이 보여요. 동전을 꼭 쥐고 있으면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외롭지 않아요” 여자는 눈치해고 있었다. 남자의 기억이 지워질수록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애절한 스토리를 공연 내내 풀어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극은 이 또한 엄연한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두 사람의 행복은 너무도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에서 피어났다. 배려하고 존중했고 게다가 서로를 너무도 사랑했다.


| 역발상으로 조명한 행복. 행복이란?

넌 행복하니?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정의를 내리기 힘들지만 드라마에서 곧잘 나오는 대사다. 연극 행복이야말로 대사의 의미에 대해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단순히 웃을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다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극중 부부로 나오는 두 사람의 그렇지 못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했기에 상식으로 여겨지는 행복에 대한 의미를 부끄럽게 만든다.

초반의 웃음이 후반에 들어가면서 눈물이 되고 곧 이어 숨겨야 할 두 주인공의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 내렸다. 분명 슬프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장면이고 정말 행복한 모습임이 분명하다.

깜박이는 기억에 아내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저 안타깝고 애처로운 충격적인 장면이 분명하다. 다만 이후 남자의 기억 속에 아내는 지워졌고 불행이 아닌 행복만 남아 있을 것을 생각하니 다행이라고 여겨질 뿐이다.

여전히 정의내리기 어려운 행복. 연극 행복은 어려운 행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분명 난해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행복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게 바로 연극 행복을 머리로 접근하고 이해하려 했다면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행복은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이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었기에 마지막까지 진정으로 행복했다. 따라서 눈물 나는 행복이야기 연극 행복은 진정으로 행복한 이의 행복한 이야기다.

연극 ‘보고싶습니다’ 제작진으로 알려진 이선희 작가와 정세혁 연출이 의기투합해 만든 연극 행복. 보기 드문 2인극 작품임에도 인기에 힘입어 상반기에 이어 보강된 시나리오로 돌아온 행복 시즌2 작품이다.

연극 '클로져' '스페셜 레터' 이후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나선 신다은과 연극 보고 싶습니다. 강풀의 순정만화, 지상의 모든방들, 나의교실, 로베르트주코, 마지막 20분을 말하다. 방송 왕과나, 큰언니, 구미호여우누이뎐에 출연한 한소정이 아내 역을 더블캐스팅으로 열연했다. 남편 역은 연극 청춘예찬, 보고싶습니다. 나쁜자석, 이기동체육관에 출연한 김동현이 나섰다. 연극 무대는 9월 23일부터 오는 11월 6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4관에 마련됐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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