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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연애의 환상을 깬 ‘걸림돌’, 그래서 ‘미운 정’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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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클리포스트 2018. 10.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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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연애의 환상을 깬 ‘걸림돌’, 하지만 ‘미운 정’에 산다.
청춘남녀의 달달한 연애관과 진솔한 현실 로맨스




[2018년 10월 17일] -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연애를 꿈꾼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중학생이 돼서야 첫사랑이 생겼다고 수줍은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연령대도 낮아져 가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도 ‘저 남친 있어요’ 혹은 ‘제 남친은 이 친구예요’라며 SNS 상태에 ‘연애 중’ 이라고 공개하는 아이들도 왕왕 있는 만큼, 연애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뜨거운 감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어린 청춘들은 알고 있을까? 마치 뜨거운 외줄 타기를 하듯 아찔한 연애도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거치고 나면 오로지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끝을 내야 한다는 것을. 서른여섯의 나이만큼, 내 연애도 참으로 화려했다. 수많은 연애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말을 꺼낼 수 있는 것은 내 연애 이야기, 특히 마지막 연애인 지금의 배우자 이야기를 잠시 꺼내 보도록 하겠다.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만날 사람은 만나더라


보통은 연애한다고 하면 캠퍼스 커플이거나, 같은 직장을 다녔거나, 오랜 친구의 우정이 사랑으로 변하거나,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조금 달랐다. 2만 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잠실야구장에서 처음 만나 1년 반 가령 연애를 했고, 바로 결혼을 했다. 물론 한 구단의 팬이라는 공통점, 그리고 동호회라는 매개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기한 것은 첫 만남 자리에서 서로에게 ‘대체 쟤는 뭐지?’라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는 거다. 남편은 남들이 다 알 만한 유명한 선수를 좋아하고 유니폼을 입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1군보다 2군에 더 오래 있는 선수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다녀서 신기했다고 했다. 또 나는 분명 글 쓰는 직업이 아닌 사람인데 야구 구단별 전력분석 등의 글을 참으로 찰지게(?) 써서 커뮤니티에 올리는 저 남자의 필력은 뭐야? 라는 호기심으로 끌렸다.

영화를 보고 커피숍을 가는 평범한 데이트를 하는 보통의 연인들과 달리 우리 부부의 데이트 장소는 오로지 야구장이었다. 서로의 일과가 끝나고 나면 바람같이 달려가 야구 경기를 보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길 좋아했다. 함께 사직 야구장이나 인천 문학야구장으로 원정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당시, 나는 일했던 매체의 편집장님과 대표님께 ‘야구장 너무 자주 가는 것 아니야?’라는 우려와 경고성 말씀들을 듣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눈에 콩깍지가 쓰인 듯, 연인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에 퇴근과 동시에 바람같이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야구장으로 내달렸고, 결국 2013년 11월, 결혼식장에 찾아와 주신 직장 상사분들 및 지인들은 “네가 이래서 야구장에 자주 갔던 거구나?”라는 웃음 섞인 축하로 이해를 해 주셨다.


결혼은 시작됐으나 연애의 환상은 현실로 끝났다


이렇게 나는 결혼을 했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과 혼인신고라는 제도로 인해 ‘연인’에서 ‘부부’로, 그리고 한창 연애를 할 때만큼의 감정과는 달라진 삶을 살게 됐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확실히 결혼과 동시에 오래도록 연애의 감정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다. 하지만 연애 중의 감정이 신혼 시절에 오래도록 남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결혼과 동시에 막막한 현실이 펼쳐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실직으로 인한 금전적 어려움, 그리고 감히 언급하기도 힘든 집안일들이 결혼 이후 5년 사이에 연쇄적으로 펑펑 터졌다.


둘의 공통점이었던 야구마저도 조금은 멀리하게 됐다. 야구장에 가서 팀을 응원하는 방식이 조금은 차이가 있기에, 야구장에서마저 크게 싸우고 집에 들어오는 날도 늘어났고, 발길이 뜸해졌다. 연애할 때는 한 번도 싸운 적 없던 우리 부부가 부모님을 경악시킬 만큼 크게 싸우게 된 날도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상황을 알게 된 지인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네가 보살이냐? 그걸 다 어떻게 참고 살아? 그런 너도 대단하다.”


연애감정보다는 정, 그리고 의리로 산다


분명히 이 얘기는 남편도 남편의 지인에게 비슷하게 들었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도 아니고, 이혼도 흠이 아닌 시대인데 왜 아직도 그러고 살고 있느냐는 지인들의 말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물론 있다. 내가 들은 직언을 더 하자면, SNS를 통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신혼부부 코스프레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적도 있다.


올봄, tvN에서 방영했던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남편도 그랬던 것 같다. 드라마 방영 이후, 남편의 SNS 소개 글에는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했던 대사가 들어가 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이기에 서로 속을 썩이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을 테니 아직은 참고 살고 있다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드는 ‘권태기’에 들어선 것이냐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나는 결혼생활 5년 만에 평생토록 영원할 수 있을 거란 연애의 감정은 자연스레 포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애라는 것은 가볍기도 하지만 때론 엉킨 실타래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길을 잃어버려서 같이 그 실타래를 풀어야 할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것이 연애다. 적어도 한 사람의 여성 그리고 남성이, 서로에 대한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해야만 지금처럼 마음대로 엉켜져 있는 실타래를 조금이나마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결혼과 동시에 연애는 끝나고 정으로, 의리로 산다.’고.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 말에 동감했다. 그 미운 정마저도 연애의 감정이 남아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아직 나에게는 고운 정이든 미운 정이든, 정을 둘 곳이 하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마도 뭔가 더 커다란, 쓰나미가 한번 쓸고 지나가지 않는 한 미운 정이라도 한 번 더 붙여보며 살아보려 아등바등하는 중이다.

By 김미리 에디터 milkywaykim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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