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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닥터 이라부, 마음속 병 고치는 엽기 전문의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2. 1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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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강박증 환자만 찾는 이 곳. 특별한 처방전 전격 공개

세상일은 원래 어려운가요? 뜻대로 안 되는 일은 왜 이리도 많은지. 친구 관계, 부부 관계, 직장 관계. 모든 것이 마냥 쉬울 거라는 나의 생각은 그저 착각에 불과했나 봅니다. 마음에 삭히고 또 참고 삭히면 괜찮아 질 거라고, 잘 될 거라는 믿음 하지만 그 믿음은 오히려 내겐 병으로 나타났습니다. 남들은 나의 증상을 전문용어로 강박관념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지금은 너무 힘들어 의지하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생각합니다. 너무 늦어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까지 심각해진 것은 아닐까 하구요. 하지만 아직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이대로 포기하기에도 억울하기에 용기 내어 병원 문턱을 넘습니다. 닥터 이라부 내 병을 치료해주세요.

정신과 전문의 닥터 이라부는 오늘도 새로운 환자를 대면한다. 그동안 많은 환자가 이라부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하나같이 독특한 치료법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에게도 사실 두려움이 있다. 누구에도 말 못한 지독한 다한증. 환자만 대면하면 땀 뻘뻘 흘리는 증상은 공연 내내 보는 이 조차 안쓰럽게 한다.

하지만 그러면 어쩌리. 그는 모든 이의 마음속 병까지 말끔히 치료해주는 명의인 것을.


대학로에 다시 돌아온 본격 버라이어티 메디컬 쇼. 닥터 이라부가 2010년 9월 15일부터 오는 11월 28일까지 화려한 막을 열었다. 약 3년 전인 2007년 초연 공연에 힘입어 앙코르 공연을 결정지었고, 1년 뒤인 2008년 3월부터 초연을 각색한 2차 업그레이드 작품이 초반 기선 제압에 성공하면서 닥터 이라부 열풍을 예고한 바 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인 2010년 3차 공연에 돌입했다.

초연 당시부터 파격적인 설정은 수정에 수정이 더해져 더욱 충격적으로 변했으며, 3차 2010년 공연은 ‘쇼’ 라는 기존 공연과 비교를 거부하는 돌발적인 형식으로 바뀌었다. 연극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뮤지컬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데려와 직접 보여줄 수도 없고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는 공연. 보면 마냥 신나고 어께 들썩인다.

제작사 표현을 빌려 쓴다면 버라이어티 메디컬쇼라는 생소한 형식을 빌린 공연이 대학로에 돌아온 것. 공연장 이름조차 행복한 극장. 해당 공연을 보는 세상 모든 이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결정 내린 산택이라면 정말 제작사의 센스가 넘친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보는 이 조차 행복하는 하는 공연 버라이어티 메디컬 쇼. 닥터 이라부가 대학로에 돌아왔다.

| 주사 한 방이면 모든 병이 ‘싹~’

이 병원에는 묻지도 따져서도 안 되며 일단 맞아야 하는 특별한 주사가 있다. 게다가 의사라는 작자는 환자를 대상으로 농담도 엽기적으로 한다. 그렇다 보니 그에게는 엽기 전문의라는 별명도 붙었다. 심히 전문의인지 의심까지 가는 상황. 대놓고 자격증 확인해보자는 요구를 할 만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드세던 환자도 이라부 앞에만 서면 순한 양으로 변한다.

마주치기에도 겁나는 아스팔트파의 행동대장 강철근도 이 병원을 찾아 이라부를 대상으로 손찌검을 하기에 이른다. 환자가 의사를 협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임에도 말장난으로 가볍게 넘겨버리는 닥터 이라부. 왠지 한두 번 경험해본 솜씨가 아니다. 게다가 그 옆에서 묵묵히 주사 삼매경에 빠진 간호사 마유미는 묘한 매력을 풍기며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이 병원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첫 번째 고민 상담자는 세상 모든 뾰족한 물건만 보면 무섭다는 선단공포증 환자역의 강철근. 조폭이라는 모두를 두렵게 하는 직업 아닌 직업을 가진 그는 아니러니 하게도 크기와 상관없이 날카로운 물건만 보면 예민하게 반응한다. 예로 칼, 이쑤시개처럼 끝이 뾰족한 물건은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다. 심지어 이라부가 손에 쥐고 있는 볼펜 또한 마찬가지로 그의 눈에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두 번째 환자는 동화 백설 공주에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누가 제일 예쁘니 에서 나오는 왕비를 가볍게 재껴 버리는 자아도취의 절대 강자. 일명 자의식과잉 환자로 등장하는 이혜리. 잘나가던 연예계의 신데렐라에서 나이 들어 신예 배우에게 치이고 자신의 설 자리까지 빼앗겨 삼류 홈쇼핑에서 모델로 전전하는 그는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꿈속에서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상 모든 것과 타협을 포기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맞춰가가다 병이 되버린 음경강직증 환자역의 김선남. 전형적인 직장인으로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를 보며, 퇴근 이후에는 잘나가는 아내 눈치에 어께 펼 시간조차도 없는 그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된 것은 아내와의 이혼 직후다. 어느 순간 제어가 안되는 자신의 몸을 치료 받고자 이라부를 찾아온다.

거론된 모든 환자의 공통점은 자신을 괴롭히는 지독한 강박증을 앓고 있다는 것.  정신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닥터 이라부는 공통된 처방전을 제시하고, 주사 한방과 함께 환자의 사연을 하나하나 파헤치면서 병을 치유하기에 이른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닥터 이라부라는 한 편의 뮤지컬에 현대인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는 웃음 폭탄의 원천이 주된 이유다. 지독하게 웃겨서 혹은 억지 유머를 남발해 웃을 수밖에 없는 대학로 무대에서 흔하게 다뤄지는 설정극이 아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과 스트레스를 공연 소재로 다뤄 공감대를 형성했다. 웃고 떠들다 보면 마음속 응어리진 감정이 어느덧 스스럼없이 풀린다. 바야흐로 닥터 이라부는 명의임이 틀림없다.

| 행복이란 마음먹는 대로 되는 것.

아프면 병원 가서 치료 받고 약타먹고 주사 맞고 치료하면 된다. 하지만 마음속의 병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설명하기에도 어렵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난해한 감정을 이해한다고 나선다면 자칫 오해를 살만하다. 그럼에도 닥터 이라부는 모든 치료에 정공법을 도입했다. 자신을 알아야 남을 알 수 있으며, 남을 알게 되면 자신의 문제점도 저절로 치유된다는 이론에 기초한 것. 말은 그럴듯하다.

때문에 모든 환자는 닥터 이라부와 티격태격 말장난과 같은 치료를 받은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병을 치유하기에 이른다. 개성강한 환자만 찾아오지만 더 개성강한 의사의 말에 순응하며, 지존의 경지에 이른 간호사 앞에서는 눈 마주치기에도 힘든 이곳은 닥터 이라부가 운영하는 정신과 병원이다.

마찬가지로 관객도 이곳에서는 환자에 불과하다. 좌석 배열에 따라 나뉘는 객석은 1병동부터 중증병동까지 증상에 따라 구분되어지며, 단연 압권은 중증병동이다. 물론 닥터 이라부 전 출연진조차도 절대 중증병동은 건들지 않는다. 고로 공연 중간 중간에 다양한 요청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중증병동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주요한 요령이다.

| 오쿠다 히데오 식 병동 이야기

닥터 이라부의 탄생 배경은 소설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인더폴, 공중그네, 면장 선거 원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라부 이치로는 공연 무대 위의 닥터 이라부라는 가공인물로 탄생해 소설 속의 이야기를 답습하고 있다. 쉽게 떠오르는 깔끔한 이미지의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푸근한 몸매에 전혀 관리 안 된 스타일까지 모두 오쿠다 히데오 소설속의 배경과 100% 일치한다.

여기에 소설 속에서는 펑크록 밴드의 멤버로 등장하는 간호사 마유미는 무대 위에서 과감한 가창력을 기반으로 실력을 뽐낸다. 돌발 요청으로 관객을 무대로 불러다 놓고 능청을 떨며, 선물이랍시고 전달된 봉투속의 종이에 적힌 것이 마유미의 친필 싸인 이라는 것이 공개되는 순간 주변 관객은 폭소와의 조우를 시도한다. 엽기적인 공연 속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모든 이벤트 또한 엽기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너무도 뻔 한 예상.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이 뻔 한 공연 무대일 것이라는 기대 또한 빗나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닥터 이라부는 복잡한 현대인이라며 부담 없이 즐기고 스트레스 불 수 있는 작품이며, 병원 문턱을 드나들지 않더라도 마음속 고민까지 해결할 수 있는 유쾌한 만병통치약과 다름없다. 물론 각오는 해야 한다.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는 주사 한 방. 무얼까? 혹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다녔던 만병통치약 일수도 있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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