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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블랙코미디, 요지경 속 세상이 파헤치는 인간 내면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2. 1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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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성좌가 대학로 문화공간 엘림홀 무대에 올린 공연의 제목이 블랙코미디이다. 백과사전에서는 상기 내용처럼 상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영화와 문학에서 통용되는 설명일 뿐 연극 블랙코메디가 다루는 내용과는 하등의 연관이 없다.

블랙코미디 - 명랑한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에 대해, 사람을 웃기면서도 인간존재의 불안·불확실성을 날카로이 느끼게 하는 것으로, 유머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 있지만, 블랙유머에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불신·절망이 숨어 있다. 고전적인 블랙 코미디가 희극 전통에 바탕을 두고 암시적으로 인간 사회를 풍자했다면 현대로 넘어오면서 그 독설의 강도는 더 세졌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자칫 제목만 봤을 때에는 특별한 용어를 지칭하는 느낌의 블랙코미디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은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에피소드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연극 블렉코미디 속에서 펼쳐지는 세상을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잣대로 바라보면 안된다.

모든 것이 정 반대로 뒤집어진 세상. 그 속에 블랙코미디가 연극 속에서 말하고자하는 참 뜻이 숨겨져 있다. 게다가 그렇게 펼쳐지는 세상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허상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한 편의 연극을 통해 나라도 동일한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고 동의할지 모른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면 일 테니.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 이 세상에 제대로 된 것이 몇 이나 있을까? 요즘같이 혼란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 변화를 보면 누구나 답답함을 토로한다.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사람 대우 받으며 사람처럼 살겠다는 고민. 하지만 그것은 마음속의 외침으로만 빛을 발할 뿐이다. 그게 바로 인생이며,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짐한다.

여기 모든 것이 뒤틀려도 제대로 뒤틀린 세상이 있다. 돈과 명예, 부와 권력이 뿌리 깊게 연관된 세상에서 주인공인 무명 조각가 브린즈리 밀러는 백년가약을 맺을 준비를 한다. 그것도 4년간이나 사귄 애인 클레아를 뒤로하고 모르게 일을 꾸민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애인 클레어는 오늘 날의 표현으로 너무도 ‘쿨’ 하다. 다시 내게 돌아오겠니, 아니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버릴까. 라는 두 가지 뜻이 내제된 심보를 태연하게 펼친다. 관객의 입장에서 저렇게 매력적인 여인을 왜 버리고 딴 여인과 결혼하려고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니, 이쯤 되면 남자는 나쁜 놈일까?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밀러의 이중 행각은 불과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발각되고 만다. 애초부터 밀러가 모두를 속일 생각을 했다면 더욱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야 했을지 모른다. 그렇지 못한 밀러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도 없이 가난하게 살아온 것. 그리하여 다소 어수룩한 순박함이 남아 있는 청년이라는 점이 유일한 흠이며, 그렇게 살아온 궁색하고 궁핍한 인생 역경을 결혼이라는 한탕주의를 통해 실현코자 꿈꿔왔다. 바로 약혼녀 캐롤을 통해서다.


| 모든 것을 ‘다’ 뒤집어라,

CF에서 나온 문구가 아니다. 연극 블랙코미디를 이해하기 위해 관객이 취해야 할 자세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전기 수리공으로 등장하는 슈판찌히는 극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무대에 나와 관객을 대상으로 조명에 대해서 설명하는 친절함을 발휘한다. 어떠한 연극에서 불 켜지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겠는가!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면 특이하게도 조명을 위로 올리면 불이 꺼지고, 내리면 켜지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상식과 정 반대의 움직임이다.

그렇게 연극은 암흑 속에서 시작된다. 남자배우와 여자배우가 등장하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기를 펼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무대 형상. 그리고 형체만 흐릿하게 보이던 허상이 머릿속에 제대로 된 무대로 구성돼 펼쳐진다. 하지만 왠지 낮익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던 무언가를 쫒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불이 켜졌을 때 한 동안 우리의 시선은 밝은 불빛에 반응해 암흑속에서 경험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을 보인다. 흐릿한 형상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뚜렷해지는 눈 앞 광경. 그제야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진정성이다.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리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 “사랑한다고 100번 외쳐도 이별하자는 한 마디에 닫히는 미니홈피를 보며”라는 한 포털 광고 속의 멘트처럼 우리 사회는 보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 일까? 안타깝게도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나오는 문구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에 정답이 나와 있다. 언제부터인가 내면은 꽁꽁 동여매고 외적인 면을 중시했던 우리네 삶. 겉으로 보이는 사이즈 경쟁에 치중한 사이 내면은 가뭄에 찌들어 매말라버린 것이다.

극 속 주인공은 무명 조각가로 등장한다. 아무리 벌어도 신통치 않은 생활에 결국 4년간이나 사귄 애인을 버리고 돈 좀 있는 집안의 딸과 약혼까지 이르지만, 당장 눈으로 증명해야 하는 재력과 명성을 충족하지 못해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내면서 모든 일은 점차 어긋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무명 조각가의 아파트 전체가 정전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고 그 사이에 훔쳐온 물건의 주인이 오랜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안 되는 놈은 무엇을 해도 안된다고, 큰 맘 먹고 꾸민 일은 시작부터 얽히더니 결국 되돌릴 수 없을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뭔짓을 못하겠는가. 다섯 정거장의 거리를 단숨에 다녀오고,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속에서도 무거운 짐을 척척 옮기는 초인 같은 힘을 발휘하는 남자. 그 속에서 펼쳐지는 서툰 행동이 유발하는 어색한 웃음속의 진실이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려 한다.
 
| 특별한 작품, 특별한 의미 담겨 무대에

따져 보면 사회를 향해 비윤리적인 행태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올해 무대에 오르는 블랙코미디는 극 속에 담겨진 내용을 따져보기 이전에 더 특별한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바로 41년 전통의 극단 성좌의 창단 대표인 고(故) 권오일 연출의 2주기를 기리는 뜻에서 마련된 특별한 의미가 담긴 작품인 것.

1969년 극단 성좌를 창단한 권오일 연출은 40여년간 리얼리즘 연극을 고수해 온 국내 1세대 연출가로 지난 2008년 병으로 별세했으며, 그의 딸 권은아씨는 권 대표의 뒤를 이어 대학로에서 연출가로 활동 하면서 이번 블랙코미디에는 예술 감독으로 참여해 부친이 무대 위에 펼쳐 보이고자 했던 뜻을 펼쳤다.

블랙코미디는 영국 극작가 피터셰퍼의 작품 가운데 하나로, 고인이신 권오일 대표는 지난 1982년 초연 공연을 통해 국내에 본 작품을 처음 알렸다. 이후 블랙코미디는 이번 공연까지 합하면 7번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 탄탄한 기반을 다졌고 대학로 공연에서 코미디 장르 연극의 기틀을 확립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 블랙코미디의 이번 작품에는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동료 및 후배 배우가 십시일반 공연에 참여하는 등 선후배의 끈끈한 우애를 펼치며 최근 보기 드문 동료애를 증명했다. 권 대표와 함께 활동했던 김익태, 김정균, 지미리, 조주현 그리고 김성민, 이일섭 이 밖에도 김효신, 인성호, 장설하, 장혁진, 홍성숙, 서주성, 한미진 배우가 무대를 빛내고, 이일섭, 이태식도 감칠맛 나는 연기에 합류한다.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우리 사회를 세태를 노골적으로 풍자한 연극. 그렇기에 정상적인 시선이 아닌 시작부터 아무것도 없을 것 만 같았던 어두운 암흑 속에서 연기를 펼치는 연극. 블랙코미디. 선과 악이 존재하거나 이별과 사랑만이 난무하던 최근 공연계에 돌아온 특별한 작품. 허탈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진정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며, 한 편으로는 웃기지만 다소 심오한 내용이다. 공연문의 070-8804-9929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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